“형님 태백 눈 엄청 왔데요” 라는 후배의 말을 미끼로 덥썩 물어 버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을 맞이하여 다시 길을 나섰다. 강원도로 향하는 길, 그것은 마치 사라져가는 계절을 마지막으로 어루만지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백패킹 계획이란 본래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불현듯 결심을 하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계획 하나가 일주일의 나머지 날들을 견디게 한다.
겨울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CCTV 화면 속에는 산길의 눈이 운전에 적당한지, 혹은 정상에 흩어진 눈의 흔적이 어느 정도인지가 비쳤다. 날씨누리 앱은 더 세밀한 정보를 보여주었지만, 결국 가장 확실한 것은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출발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겨울은 흩어지는 속도로 끝나지 않았다. 원주와 횡성까지만 해도 겨울은 그저 희미한 흔적처럼 보였건만, 대관령에 다다르자 모든 예측은 무너졌다. 길가에는 흰 산맥이 새로 생긴 듯했다. 포크레인이 눈을 퍼 나르는 장면을 처음 보았다. 마치 겨울을 서둘러 도려내려고 하는 듯한 거대한 손길 같았다.
도로는 차를 위해 정리되어 있었으나, 사람을 위해 남겨진 길은 없었다. 발걸음 하나 허락되지 않은 길. 문득 박지로 향하는 도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과연 차는 올라갈 수 있을까? 혹여 길이 얼어붙어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 속에서도, 나는 또다시 눈을 기대하고 있었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했다. 두려움과 설렘이 한 몸처럼 얽혀, 나를 다시 겨울 속으로 한껏 밀어 넣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박지 근처, ‘와우 안반데기’라는 작은 카페까지의 길은 막힘없이 열려 있었다. 두터운 눈이 산을 덮고, 바람이 흩뿌린 결정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이런 풍경 속에서도 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그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을 밀어내고, 얼음을 깨부수는 손길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곳까지 오는 길은 더디고 험했을 것이다. 강원도의 공무원들, 그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길 위를 달리며 마음 깊숙이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눈 속에서도 길을 내어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겨울 가장 따뜻한 위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 ‘와우 안반데기’의 커피값은 두 배여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더한 값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삼킬 때마다, 그것이 내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감사함으로 저축되는 기분이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손끝을 덥히는 온기와 함께.
차에서 배낭을 꺼내는 순간까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오늘 밤을 함께할 텐트. 들머리에서는 드디어 결정을 해야 된다. 그날의 날씨, 주차장에 있는 차의 규모, 바람의 세기, 공기의 무게. 모든 것이 선택을 좌우한다. 이번에는 큼지막한 에어로라이트3를 꺼냈다. 세 사람이 눕고도 넉넉한 공간. 그만큼 무겁고, 그래서 쉽게 손이 가지 않던 녀석. 하지만 오늘은 그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보기로 했다.

박지로 향하는 길, 눈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지만, 길모퉁이에 쌓인 잔설이 간밤의 흔적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나는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신중함보다는 게으름이 이기는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그 게으름이 조용히 승리를 거머쥔 날이었다.
안반데기의 정상 부근, 밭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산책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개는 그 밭 가장자리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지만, 길가에 쌓인 눈더미가 너무 높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나는 산책로 입구에 자리를 마련했다. 오르는 길에 만난 한 여행객이 말하길, 누군가 놀라운 자리에 텐트를 쳐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상고대가 환상처럼 내려앉은 소나무 아래, 한 점의 그림처럼 텐트가 놓여 있었다. 흰 서리가 나뭇가지마다 엉겨 붙어, 그 텐트를 감싸 안고 있었다.

삽을 들고 자리를 다지려 했다. 스무 해도 더 지난 군대 시절의 감각이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얼어붙은 땅을 부드럽게 깎아내는 일,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오래된 의식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미 자리를 잡고 계시던 백패커가 삽을 들고 다가왔다.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선뜻 거절하지 못했다. 삽질은 내게 하나의 작은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을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삽을 내려놓으며,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삽을 움직이다 보면, 전날 혹은 더 이전에 다녀간 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 부드럽게 눌린 땅, 혹은 무심히 덮인 눈밭 아래의 미세한 변화들.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나는 그들이 남긴 LNT(Leave No Trace)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누군가는 바람처럼 다녀갔고, 누군가는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나도 그렇게, 없는 듯 다녀가야지.
LNT라는 건 어쩌면 깨진 창문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작은 균열 하나가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알기에, 흔적 없는 발걸음을 남기려 애쓴다. 마치 눈밭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이곳을 다녀간 기억마저도 조용히 스며들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 나도 이곳을 지나간다. 마치 봄이 한겨울의 지금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듯이 말이다.
친화력 좋은 이웃 백패커 덕분에 저녁을 함께 나누고, 조촐한 반주까지 곁들였다. 겨울이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백패킹을 해온 초보자인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경험을 가진 분이었다. 그는 연신 나를 형님이라 부르며, 마치 오래된 지기처럼 호형호제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어울린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대학 축제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들 틈에서 웃고, 떠들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긴 사회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가면을 익히고, 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적당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곳, 자연 속에서는 그 가면이 너무 쉽게 벗겨진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지듯, 가면도 흔들리고, 흩어진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그저 사람의 온기, 함께 나누는 작은 술잔, 그리고 미소.

이렇게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우리는 본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며, 바람처럼 스며들고, 물처럼 흘러가며. 그 밤, 나는 오랜만에 가면을 잊었다.
밤새 텐트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흔들린 나뭇가지가 품고 있던 눈을 흘려보낼 때마다, 작은 숨결처럼 가벼운 소리가 텐트를 또르르 두드리며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마치 겨울이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잘 가, 나는 여기까지야.’ 하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소리를 들었다. 떠나는 계절을 배웅하듯, 조용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