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옛날을 생각하게끔하는 글을 발견하고 트랙백을 해본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 부모님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다.
다만 ‘군대가니 부모가 그립니다.’라는 그런 단순한 소중함이 아니였다.
그 당시의 나의 의무는 어떻게 하면 소대원들을 다치지 않게 보살피다 집으로 보네줄까 하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군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소대원들 면담을 하고 면담철 작성을 해야한다. 소대장의 아주 기본적인 의무중에 하나이다.
처음 소대원을 받아서 면담을 하면서 매번 느꼈던게 ‘왜 이런 친구들만 내 소대에 오는건가? ‘ 였다.
도대체 병무청은 일을 하는건지?
대부분 건강에 이상이 없는 친구가 거의 없었고, 부모님 둘중에 한분이 안계시던가 이혼한 부모를 둔 소대원이 태반이였다. 그렇다고 학벌이 좋은것도 아니다. 34명의 소대원중에 대학다녔던 친구가 10명 남짓….그것도 4년제 대학다니다 온 친구는 5명정도…
나는 처음에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만 이런 오지(GOP)근무에 오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걸 알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부모님 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자란것이였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들만 만나온것이였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나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4년제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 그들이였다.
그래서 가장 큰 고민이 이런 다양한 친구들을 어떻게 하면 이끌어 나갈지 하는것이였다.
다양성을 어루안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의 곁에 항상 있는것이였다.
항상 관심을 가져주고 부모님 건강에 대해서 물어보고, 물론 물어본거 또 물어볼수도 있다.
나역시 장교지만 내 의무복무를 하러왔다는것이였고 형 동생처럼 어우러질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다.
운동보다도 책읽는걸 좋아하는 성격이였지만 소대원들과 함께 운동하려 노력했고, 항상 옆에 있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러니 자연스래 그들도 나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노력하고 있다는걸 느낄수 있었을것이다.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닿아서 공동목표인 건강한 전역을 할수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소대장이 능력있답시고(?) 2년동안 소초생활만 3번을 해버린 불행한 소대였지만 그래도 꿋꿋이 따라와준 그당시 내 소대원들에게 정말 고맙다는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전역후에는 부모님께서 얼마나 나를 좋은 환경에서 키워주셨지는 잘 알수 있었고,
정말 행복한 사람중에 하나였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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