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에 군대에서 함께 장교양성기간동안 내무실을 같이 쓴 동기한명이 찾아왔다.
가끔 연락하는 정도였지만, 힘든 시기에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을 많이 한 사이라서 정말 친한 동기중에 하나이다.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러 온 주제는 앞으로 경력관리와 30대, 40대에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 할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어떻게 생활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물어보러 왔다.
저녁시간도 아니고, 회사에다 거짓말하고 나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는데에 결코 그냥 지나칠수 없는 포스를 느꼈다.
‘이놈 정말 고민 많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
뭐 어찌 고민 상담을 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 적지 않을꺼다. 개인 프라이버시와 관련이 있는 문제니.
여기서 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본다. 가끔 아니 요즘들어서는 자주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인생 상담을 하러 많이들 찾아온다. 그런 횟수가 늘어날때마다 내가 정말 다른사람의 인생을 상담해줄만큼 충분히 자아가 충족이 되고,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난 절대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주변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많고, 깊고, 생각한것들의 행동에 바로 옮기는 추진력이 있는 사람 정도. 그리고 나의 생활 자체가 타의 귀감이 되는 그런 삶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한다.
물론 이건 절대 자랑은 아니다. 그만큼 다른사람이 봤을땐 딱딱하고 지루한 생활일수도 있다는것이다. 특히나 나의 여자친구가 봤을때는 영 형편없는 남자친구 였으니까.
얼마전에 소개팅 나가서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 하고나서 이런 피드백이 온적도 있었다.
“다 괜찮은데, 너무 바쁜사람같다.”
역시나 나도 그 여자분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공을들여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두사람의 그런 말의 밑바닥에는 “저 사람 과연 나를 챙겨줄수 있을까?” 하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가 옆으로 셌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내 꿈을 위해서 바쁘게 살아간다는거고. 여자친구(애인)에게 귀감이 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동성친구에게는 귀감이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 생각을 곰곰히 해봤다.
기폭제가 된것이 대학교때였던걸로 기억이 난다. 그때는 가치관이 무조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느껴보자 였다. 그당시 동아리 생활만 세군데를 했고, 학교에서 주는 다이어리에는 빼곡하게 종이가 모자랄정도로 지인들의 주소및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래 학업은 뒷전이 되었고, 게다가 학군단 생활까지 하느라 정말 내가 무엇을하러 대학을 다니는지 4년 내내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졸업후 군대에 가고, 군대 전역3개월을 남겨두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내가 과연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대학에서 배운건 그당시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학생본분인 공부를 소홀히 한 대가로 악몽까지 꿔야되었으니까.(하지만 그당시 배운 인간관계 기술은 나를 어느 상대방에게나 적응할수 있는 능력을 키워줬다.)
그때 ‘이왕 이렇게 내가 공부한 토목공학을 어설프게 살리느니,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미련 둘것이 없으니 버리기는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전역후 내가 의지한대로 움직이는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 주변 친구들에게 대학교 4년동안의 전공을 포기한다는 것은 큰 임펙트였다. 그리고 영 다른 분야인 컴퓨터 공학으로 간다는것에 많은 친구들이 놀랐다.
그당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일을 하면서 살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의 ‘만들어 가는’ 인생과 ‘적응해 가는’주변 친구들의 인생에 현격한 생각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정말 엄청난 편견과 어려움이 시달렸다.
전공자가 아니라는 편견에다가 석달간의 임금체불(그 당시 난 주말에 막노동을 하고 주중에 일을 했었다. 생활비를 벌기위해)같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였다. 그당시 임금체불 기억은 추후 나의 이직의 1순위 조건에 해당되게 하는 기염을 토했다. 결혼하기 전에 이런 소중하지만 더러운 경험을 해볼수 있었던 것에대해 하늘에 감사한다.
짧지만 긴 2년동안의 사회생활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나의 가치관이 형성이 되었고, 편견이 있으면 없애면 되는거라는 생각으로 대학원에까지 다니면서 셀러던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것이다.(물론 검색엔진에 대한 애정때문이라는 중요한 이유도 있다)
지금은 정말 2년전 고민하고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아래 포스트 그림만 봐도 영 다른 전보다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걸 알수 있다. 하지만 나를 지금까지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이끈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젊다는 자신감과 좋아하는 일에대한 열정이였다고 봐도 되겠다. 그리고 그런 ‘열정’과 ‘자신감’은 누구에게나 찾아보기 힘든 그런 부분이였다.
‘향싼 종이에는 향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향을 주변사람들이 맡았을 뿐이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런 독특한 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것이다.
1주일전 친구의 대학원 입학 결정에 따른 회사 퇴사 의논, 개발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의 대학원 입학에 영향을 준것, 또한 아는 군대 선배님의 경력관리에 대한 논의 등, 상당히 많은 컨설팅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사내 인간관계” 및 “상하관계”에 대한 정말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다. (이 부분은 군대에서 간부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한달전에는 직장 병역특례 하는 동생중에 하나가 이런 질문을 했다.
“형같은 사람이 왜 우리 회사에 있어요?”
“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주변사람의 편견을 참고하지는 않아!”
그 편견이라는게 얼마나 본인을 꼭두각시 처럼 움직이게 하는지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맘에든다.
나는 좋아하기 때문에 열심히 할수 있었고, 후회했기에 최선을 다할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지속이 될거라 믿는다. 이런 스타일을 유지하는 동안 또한 많은 지인들의 컨설팅 요청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말이다.
정말 나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확고하다못해 독해서 조언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만 아직은 어설프다. 그래서 대략 컨설팅 대상을 동기수준으로만 끊고 싶다. 하긴 이게 한계가 아닌가 한다. 결혼도 안했고, 물론 육아도 안해보고, 죽음의 의미도 잘 모르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것들 투성이니 말이다.
내가 남의 인생에 카운셀링을 해줄정도의 사람인가? by from __future__ import dream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 4.0 International License.